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
오늘은 조용기 목사와 팀을 이루어 한국에 오순절 성령운동을 크게 일으키고
세계최대의 교회로 성장시켰으며 이 땅에 금식기도운동을 일으켜
역시 세계 최대의 금식기도원을 창설한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의 주인공인
최자실 목사에 대해 살펴본다.
그녀는 1915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2살 때 우연히 친구와 함께
천막 부흥성회를 하는 이 성봉 목사님의 집회에 참석하여
옆집의 곰배팔이 아저씨가 안수기도 받고 낫는 것을 보고
밤낮 머리 아프다고 하는 그녀의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참석하여
이 목사님의 안수를 통해 어머니의 두통을 고침 받게 된다.
이로서 그녀와 모친은 예수를 열심히 믿게 되었다.
그녀는 이후 1935년 평양 도립간호학교를 졸업하고
압록강 국경지대 간호원과
신의주 도립병원 산파주임으로 근무하면서 한경직 목사님이 담임하던
신의주 제2교회에 출석하며 성가대원으로 봉사하고
그녀의 모친은 권사로 계셨다.
그녀는 해방 후 월남하여 서울에서 성냥공장,
비누공장, 샷틀 제조업 등 활발한 사업을 했으나
하나님을 점점 멀리하자 어머니와 장녀를 잃었고
남편에까지 소박을 맞고 사업도 무너지고 말았다.
그녀는 극약을 산 다음 삼각산 골짜기로 올라갔다.
개울가에서 약봉지를 꺼내
먹으려는 순간 돌개바람이 불어 약은 물 속으로 빠졌다.
이제 그녀는 동굴 속에서 굶어 죽으려고 6일을 버티다가
정말 죽겠다 싶어 산밑으로 내려가는데
30년 전 헤어졌던 친구를 마나 자초지종을 얘기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성령 받으라고 충고를 해주면서
바로 산 너머에 열리는 부흥회로 인도했다.
그 날 밤 기적적으로
바로 30년 만에 다시 이성봉 목사님의 설교를 거기서 듣고
소, 돼지같이 살아온 지난날을 밤새도록 회개하자
성령이 임하여 방언도 하게 되었다.
이목사님과 상담하니 순복음 신학교에 가라는 조언을 듣고
1956년 9월 순복음신학교에 들어가 거기서 조용기 학생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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